귀에서 소리를 없애지 않아도 이명이 좋아질 수 있다? 고려대병원 이명 CBT 치료법
이명이 시작되면 많은 사람들이 가장 먼저 이런 생각을 합니다.
“이 소리를 어떻게 없애지?”
그리고 소리를 없애기 위해 약을 먹고, 소리치료를 받고, 각종 영양제나 치료법을 찾아다니기도 합니다.
그런데 고려대학교 의료진이 연구한 이명 치료법에는 조금 다른 접근이 있습니다.
바로 인지행동치료(CBT, Cognitive Behavioral Therapy)입니다.
쉽게 말하면 이 치료는 이명 소리 자체만을 없애려 하기보다,
“이명 때문에 내가 어떻게 생각하고, 불안해하고, 행동하는가”
를 바꾸는 치료입니다.
놀랍게도 최근 국내 이명 진료지침에서도 인지행동치료는 이명 환자의 불편감을 줄이기 위한 치료법 중 하나로 권고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귀에서 소리가 계속 나는데 생각을 바꾼다고 정말 좋아질 수 있을까요?
고려대 연구진이 실제로 어떤 방식으로 치료했는지 살펴보겠습니다.

이명에서 정말 괴로운 것은 ‘소리’뿐일까?
이명은 외부에 실제 소리가 없는데도
- 삐—
- 윙—
- 쉬—
- 매미 소리
- 전자음
- 고주파음
등이 들리는 증상입니다.
그런데 똑같은 정도의 이명을 가진 사람이라도 반응은 크게 다릅니다.
어떤 사람은
“조금 거슬리지만 그냥 생활할 만하다.”
고 말합니다.
반면 어떤 사람은
“이 소리가 평생 계속되면 어떡하지?”
“점점 심해지는 것 아닐까?”
“이명 때문에 귀가 망가지는 것 아닐까?”
“혹시 뇌에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닐까?”
라는 생각에 빠집니다.
그리고 이런 걱정이 시작되면 이명에 더 집중하게 됩니다.
이명 → 불안 → 더 집중 → 더 크게 느껴지는 악순환
인지행동치료에서 중요하게 보는 것이 바로 이 과정입니다.
이명이 들립니다.
↓
“큰 병이 아닐까?”라고 걱정합니다.
↓
불안과 긴장이 증가합니다.
↓
귀의 소리에 더 집중합니다.
↓
이명이 더 크게 느껴집니다.
↓
“역시 악화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
다시 불안이 커집니다.
이렇게 되면 실제 이명의 물리적 크기와 별개로 이명으로 인한 고통은 계속 증가할 수 있습니다.
고려대 연구진은 이런 과정에서 나타나는 생각을 ‘자동적 사고(automatic thought)’라고 설명합니다.
고려대 연구진이 주목한 ‘자동적 사고’란?
자동적 사고란 어떤 상황에서 자신도 모르게 순간적으로 떠오르는 생각입니다.
예를 들어 이명이 갑자기 크게 느껴졌을 때
“이명은 앞으로 계속 심해질 거야.”
“평생 이 소리를 듣고 살아야 할 거야.”
“이명 때문에 잠을 못 자면 건강이 완전히 망가질 거야.”
같은 생각이 자동적으로 떠오를 수 있습니다.
고려대 연구진은 이명 환자가 이러한 생각을 무조건 사실로 받아들이면 불안과 스트레스가 커질 수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따라서 치료의 중요한 목표는
이명을 없애겠다고 싸우는 것이 아니라, 이명에 대한 왜곡된 생각을 발견하고 보다 현실적인 생각으로 바꾸는 것
입니다.
고려대병원의 이명 인지행동치료는 어떻게 진행될까?
고려대학교 연구진이 2021년 소개한 프로그램은 4주 과정이었습니다.
매주 약 20분간 개별 상담을 실시하고, 집에 돌아간 뒤에는 환자가 직접 작성해야 하는 과제가 주어졌습니다. 치료 전후 평가는 이명장애지수(THI)와 VAS 등을 이용했습니다.
핵심은 다음과 같습니다.
1단계|이명에 대한 생각을 찾는다
먼저 이명이 들릴 때 어떤 생각이 자동적으로 떠오르는지 확인합니다.
예를 들어
“왜 또 들리지?”
“오늘 더 심해진 것 같다.”
“앞으로 평생 못 고치는 것 아닐까?”
같은 생각입니다.
2단계|생각과 감정을 기록한다
환자는 일상생활에서 이명을 느낄 때
- 당시 상황
- 떠오른 생각
- 불안
- 짜증
- 우울감
- 이명에 대한 반응
등을 기록합니다.
고려대 연구진은 실제 프로그램에서 ‘사고 기록지(Thought Record Sheet)’를 활용했습니다.
이 과정이 중요한 이유가 있습니다.
평소에는 우리는
“이명 때문에 괴롭다.”
라고만 생각합니다.
하지만 기록해 보면
이명 → 부정적인 생각 → 불안 → 이명 집중 → 더 큰 불편감
이라는 패턴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3단계|‘이 생각이 정말 사실인가?’를 확인한다
예를 들어 이런 생각이 있다고 해보겠습니다.
“오늘 이명이 커졌으니 앞으로 계속 악화될 것이다.”
인지행동치료에서는 이것을 바로 사실로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대신 질문합니다.
“정말 항상 악화됐나요?”
“어제보다 작게 들렸던 날도 있었나요?”
“피곤하거나 조용한 장소에서 더 크게 느껴지는 것은 아닐까요?”
“이명이 커졌다고 해서 실제 청력이 나빠졌다는 증거가 있나요?”
이런 과정을 통해 생각과 객관적인 사실을 분리합니다.
4단계|보다 현실적인 생각으로 바꾼다
기존 생각이
“이명은 절대로 좋아지지 않을 거야.”
였다면,
보다 현실적인 생각은
“이명이 오늘 크게 느껴지지만 크기는 변동될 수 있다.”
또는
“이명이 존재하더라도 생활에 미치는 영향을 줄이는 것은 가능하다.”
가 될 수 있습니다.
이 과정을 심리학에서는 인지적 재구성(Cognitive Restructuring)이라고 합니다.
5단계|이명에 집중하지 않는 행동을 연습한다
생각만 바꾸는 것이 아닙니다.
행동도 함께 바꿉니다.
고려대 연구진이 소개한 실제 사례에서는 환자들이
- 산책하기
- 친구와 전화하기
- 음악 듣기
- 집안일 하기
- 천천히 심호흡하기
- 다른 활동으로 주의를 돌리기
등의 방법을 사용했습니다.
핵심은
“이명이 있으니 아무것도 못 한다.”
에서
“이명이 있어도 나는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 있다.”
로 경험을 바꾸는 것입니다.
결국 목표는 ‘이명을 안 듣는 것’이 아니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부분입니다.
인지행동치료는 반드시 이명 소리를 완전히 제거하는 치료라고 볼 수 없습니다.
오히려 중요한 목표는
이명 때문에 발생하는 불안·공포·집착·생활 장애를 줄이는 것입니다.
즉,
이명이 들려도 더 이상 심각하게 반응하지 않도록 뇌와 행동의 반응을 바꾸는 것입니다.
이것이 성공하면 이명 자체가 존재하더라도 평소에는 의식하지 않는 시간이 늘어날 수 있습니다.
시계 초침 소리나 냉장고 소리가 존재하지만 평소에는 거의 인식하지 않는 것과 비슷한 원리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실제 환자에게 효과가 있었을까?
이 부분이 중요합니다.
고려대 구로병원 연구진은 이후 이 방법을 보다 체계화해 외래 기반 5회 인지행동치료 프로그램을 연구했습니다.
만성 이명 환자 85명을 평가한 뒤 조건을 충족하고 프로그램을 완료한 30명을 대상으로 주 1회씩 총 5회의 치료를 실시했습니다.
마지막 치료가 끝난 후 한 달 뒤 다시 평가했습니다.
결과는 어떠했을까요?
이명장애지수(THI)와 이명 관련 VAS가 모두 통계적으로 유의하게 감소했습니다.
연구진은 이러한 결과를 토대로 외래 기반 인지행동치료 프로그램이 이명 환자에게 임상적으로 도움이 될 수 있다고 결론 내렸습니다.
하지만 여기서 ‘이명이 완치됐다’고 해석하면 안 됩니다
연구 결과를 정확하게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 연구는
“CBT를 받으면 이명 소리가 사라진다.”
는 것을 입증한 연구가 아닙니다.
평가한 주요 지표는
THI(Tinnitus Handicap Inventory)
즉 이명이 일상생활에 얼마나 큰 장애를 일으키는지와,
환자가 느끼는 이명 관련 불편감 등을 측정하는 VAS였습니다.
따라서 보다 정확한 표현은
“이명을 없애는 치료라기보다는 이명으로 인한 고통과 생활 장애를 줄이는 치료”
입니다.
2026년 국내 이명 진료지침에서도 CBT를 권고
더 주목할 만한 사실이 있습니다.
2026년 발표된 대한민국 이명 진단·치료 임상진료지침에서는 이명 치료법에 대한 연구들을 체계적으로 검토했습니다.
여기에서
- 이명 재훈련 치료(TRT)
- 인지행동치료(CBT)
- 보청기
- 소리치료
등이 검토됐으며, CBT는 이명 환자를 대상으로 조건부 권고(Grade B) 됐습니다.
특히 이 지침에서는 이명 치료의 중요한 목표를 단순히 소리를 제거하는 데 두기보다 이명으로 인한 고통을 줄이고 기능과 삶의 질을 개선하는 것으로 설명합니다.
“마음먹기에 달렸다”는 치료와는 완전히 다릅니다
이명 환자에게
“신경 쓰지 마세요.”
“마음을 편하게 가지세요.”
라고 이야기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하지만 실제 환자 입장에서는 별 도움이 되지 않는 말일 수 있습니다.
인지행동치료는 단순히
“긍정적으로 생각하세요.”
라고 이야기하는 치료가 아닙니다.
자신이 어떤 상황에서 이명에 집중하는지 관찰하고,
자동적으로 떠오르는 생각을 기록하고,
그 생각이 객관적으로 타당한지 검토하고,
다른 사고방식과 행동을 반복적으로 연습하는 구조화된 치료법입니다.
이런 이명 환자에게 특히 의미가 있을 수 있습니다
인지행동치료의 특성을 고려하면 다음과 같은 경우 특히 관심을 가져볼 수 있습니다.
이명 검사에서 심각한 원인이 발견되지 않았는데도 계속 이명에 집착하게 되는 경우,
이명이 조금 변할 때마다
“악화되는 것 같다.”
며 불안해지는 경우,
조용한 장소나 잠자리에 들면 이명만 계속 찾게 되는 경우,
이명 때문에 잠을 못 잘까 봐 미리 걱정하는 경우,
검사를 반복해도 안심되지 않는 경우,
이명으로 인해 불안·우울·짜증이 크게 증가한 경우입니다.
반대로 모든 이명을 CBT부터 치료하면 안 됩니다
이 점은 매우 중요합니다.
이명이 새로 발생했다면 먼저 원인을 확인해야 합니다.
특히
- 한쪽에서만 갑자기 이명이 발생한 경우
- 갑작스러운 청력 저하
- 심한 어지럼
- 신경학적 증상
- 한쪽 귀의 비대칭적인 청력 저하
등이 있다면 이비인후과 평가가 필요합니다.
또한 심장박동과 일치하는 박동성 이명은 일반적인 주관적 이명과 평가 방법이 다를 수 있습니다.
2026년 국내 임상진료지침에서도 박동성 이명이나 비대칭성 난청이 있을 경우 영상검사를 통한 평가를 권고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원인을 확인하기도 전에
“이명은 마음의 문제니까 CBT만 하면 된다.”
고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이 치료법에서 가장 인상적인 부분
고려대 연구진의 표현을 보면 이 치료의 목표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됩니다.
치료자가 계속 환자의 생각을 고쳐주는 것이 최종 목표가 아닙니다.
환자가 자신의 생각과 반응을 관찰하고 스스로 다른 방식으로 대응하는 방법을 배우면서 결국 자신이 스스로 치료자 역할을 할 수 있도록 만드는 것입니다.
즉,
이명이 들린다.
↓
“큰일 났다.”
에서
이명이 들린다.
↓
“또 들리는구나.”
↓
하던 일을 계속한다.
로 반응이 달라지는 것입니다.
이 차이가 반복되면 이명과 불안 사이에 형성된 강한 연결고리가 점차 약해질 가능성이 있습니다.
결론|이명을 없애려고 싸울수록 더 괴롭다면?
이명의 치료 패러다임은 조금씩 변하고 있습니다.
물론 청력검사와 이비인후과적인 원인 평가가 우선입니다.
하지만 원인을 치료한 이후에도 만성적인 이명이 남아 있고,
“이명이 있다는 사실 자체보다 이명에 대한 불안과 집착 때문에 더 괴로운 사람”
이라면 인지행동치료는 충분히 고려할 수 있는 방법입니다.
고려대학교 연구진이 한국 환자에게 적용할 수 있도록 개발·구체화한 프로그램의 핵심은 의외로 단순합니다.
이명을 억지로 없애는 것이 아니라, 이명을 받아들이는 뇌의 사고와 행동 패턴을 바꾸는 것.
그리고 실제 외래 기반 연구에서도 치료 후 THI와 VAS가 유의하게 감소하는 결과가 확인됐습니다.
어쩌면 만성 이명 치료에서 중요한 질문은
“어떻게 하면 이 소리를 완전히 없앨까?”
뿐만 아니라,
“이 소리가 있어도 어떻게 하면 다시 편안하게 살아갈 수 있을까?”
일지도 모릅니다.
이것이 바로 이명 인지행동치료가 주목받는 이유입니다.
※ 이 글은 고려대학교 의과대학 연구진이 발표한 이명 인지행동치료 관련 논문과 2026년 국내 이명 임상진료지침을 바탕으로 작성한 건강정보입니다. 개인의 진단이나 치료를 대신하지 않습니다.


